‘미의 화신’이라 불렸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일곱 명의 남자와 여덟 번의 결혼을 하며 사랑과 유혹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스캔들만으로 정의되기엔 너무나도 깊고 숭고했다. 연기, 사랑, 사회운동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담았다.
1.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눈부신 스타의 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32년 2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고, 어머니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딸이 자신의 꿈을 이어가길 바랐다. 이 바람대로 엘리자베스는 어릴 때부터 배우 수업을 받았고, 12살이 되던 해 영화 <노견의 천사>를 통해 아역배우로 데뷔한다. 어린 나이부터 압도적인 미모를 가진 그녀는 단숨에 스타로 떠오르며, 할리우드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녀가 20대 초반에 출연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지난여름 갑자기> 등은 관능적인 외모와 동시에 섬세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매혹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이 영화는 제작비도 막대했지만 그녀의 존재감이 그 모든 것을 덮을 정도였다. 이후 엘리자베스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도 거친 감정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고, 두 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외모에만 집중됐던 대중의 시선은 점차 그녀의 배우로서의 내면적 깊이에도 감탄하게 되었다. 그녀는 스타 시스템 안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고, 진정한 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2. 사랑과 결혼, 세기의 유혹자로서의 삶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랑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18세에 힐튼 호텔 창업주의 아들 니키 힐튼과 결혼했지만, 그의 폭력성과 알코올 중독으로 8개월 만에 이혼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사랑을 찾기 위해 거침없는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남편 마이클 와일딩과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커리어의 격차로 인해 5년 만에 이혼했다. 세 번째 남편 마이크 토드는 영화제작자였고, 열정적인 사랑 끝에 결혼했으나, 불과 1년 만에 항공사고로 그를 잃고 미망인이 되었다. 이 비극 이후 그녀는 친구였던 에디 피셔와 위로 속에 불륜 관계에 빠지고, 그로 인해 '가정파괴범'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에 솔직했고, 위선을 경멸했다. 네 번째 결혼이었던 피셔와의 관계는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도중 리처드 버튼을 만나며 또다시 깨지게 된다. 리처드 버튼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과 이혼을 두 번씩 반복했고, 그 안에서 11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며 ‘세기의 커플’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리처드의 알코올 문제와 성격 차이로 결국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를 "단지 문을 열어주기 위한 다른 남자들과 달리, 평생의 사랑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정치인 존 워너와의 결혼, 그리고 마지막 남편 레리 포텐스키와의 결혼까지, 총 여덟 번의 결혼과 수많은 스캔들은 그녀를 ‘사랑의 유혹자’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유혹자가 아닌, 사랑에 목말랐던 인간이었다.
3. 사랑을 넘은 신념, 사회를 바꾼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단지 사랑에 미친 여배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이다. 1984년, 친구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는 행동에 나선다.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사회적으로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유명인이 그것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녀는 선두에 섰고, 1985년 ‘국립 에이즈 연구재단’을 설립했으며, 1991년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재단’을 창립해 총 3,200억 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한다. 그녀는 개인 소장품들을 경매에 내놓고, 병원도 설립하며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몸이 쇠약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탄 채 기부 행사에 참석했고, 사후에도 자신의 초상권 수익의 25%를 재단에 기부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이러한 활동은 당시 어떤 배우나 유명인도 감히 나서지 못했던 일로, 그녀는 진정한 신념의 유혹자로 변모해 있었다. 많은 이들은 그녀를 ‘세이렌’, ‘아이디얼 러버’, ‘카리스마 유혹자’라고 부른다. 그녀는 시대와 함께 성장했고, 점점 더 깊어진 인간적 성숙함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꿔나갔다. 나이, 외모, 질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간 그 용기. 그것이야말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이유이다. 미모를 넘어선 그녀의 사랑과 신념은 여전히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