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간호단에서 배제되었지만, 메리 시콘은 포기하지 않았다. 크림 전쟁의 최전방에서 부상병을 돌본 그녀는 병사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나이팅게일에 가려졌던 또 다른 ‘백의의 천사’, 메리 시콜의 삶을 조명한다.
성장배경
1805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태어난 메리 시콜은 흑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 출신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약초학자이자 병약한 영국 군인과 그 가족을 돌보는 호텔을 운영했으며, 메리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서 약초 치료법을 익히고 의료 기술을 습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군의관과 접촉하며 실질적인 간호 경험을 쌓은 메리는 어머니처럼 자상하면서도 주도적인 여성이 되고 싶어 했고, 아버지처럼 넓은 세상을 여행하길 꿈꾸었다. 하지만 혼혈인으로서 그녀는 투표도, 공직 진출도, 많은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혈관에 영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고, 백인 남성 에드윈 시콜과 결혼하며 사회적 경계를 넘고자 했다. 그러나 화재로 호텔을 잃고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메리는 재혼 대신 의학 지식에 매진했고, 1850년 자메이카를 휩쓴 콜레라 유행 당시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실력을 입증받는다. 그녀는 질병 예방에 청결, 신선한 공기, 영양 섭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앞서 깨달았다. 외부에서 온 백인 의사보다 마을 사람들은 메리를 더 신뢰했고, 자메이카 당국도 그녀에게 병원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결혼 후 삶과 죽음
1853년, 49세가 된 메리 시콜은시콘은 크림 전쟁의 발발 소식을 듣고 간호사로 참전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그녀의 지원은 인종을 이유로 반복해서 거절당했다. 이에 메리는 좌절하지 않고 자비를 들여 크림 반도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간호단의 문은 그녀에게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군 기지 근처에 치료소 겸 호텔을 직접 세우기로 결심했다. 폐자재와 유목을 모아 만든 그곳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장교와 병사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위안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고, 동시에 병든 군인들을 치료하는 작은 병원이 되었다. 병원에 올 수 없는 중환자들을 위해 야전병원까지 물품과 음식을 전달하며 위로한 그녀는 병사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심지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전선에까지 나아가 부상병에게 물을 건네고, 그들의 마지막 눈을 감겨주는 일까지 도맡았다. 11개월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그녀의 호텔은 전쟁의 종결과 함께 의미를 잃었다. 외상값을 받지 못한 채 물건을 헐값에 처분한 메리는 파산한 상태로 런던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공로를 기억하던 병사들은 그녀를 도와 기금을 모으고 훈장을 추천하는 등 늦은 보답을 전했다. 한편, 전쟁이 끝난 후 언론과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게 쏠렸다.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의 위생환경을 개선하고, 밤마다 등불을 들고 병사들의 상태를 살폈다고 전해지며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렸다. 반면 메리 시콘은 정식 간호교육을 받지 않은 흑인 여성이었기에 언론은 그녀의 존재를 철저히 외면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그녀가 보여준 헌신은 결코 작지 않았고, 병사들은 그녀를 진정한 백의의 천사로 기억했다. 늙고 병든 몸으로 런던에서 생을 마무리한 메리는 1881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그녀는 말년에 갖은 병으로 고통받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존경받는 존재로 남았다.
그녀 사후
메리 시콜의 죽음 이후, 그녀의 이름은 점차 잊혀갔다.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식 역사 속에서조차 소외되었고, 그녀의 초상화조차 오랜 세월 분실된 채 남겨졌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 런던의 한 액자 가게에서 그림을 교체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그림 한 점이 그녀를 다시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 속 주인공이 바로 메리 시콜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녀의 숨겨진 업적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초상화는 영국 국립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되었고, 다양한 학술 연구와 언론 보도를 통해 그녀의 삶과 헌신이 재조명되었다. 그녀가 생전에 받은 터키, 영국, 프랑스의 훈장은 그녀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했는지를 증명해 주는 유산이 되었다. 현재 영국에서는 메리 시콜은 기리는 간호사상도 세워졌으며, 그녀의 이름을 딴 장학금과 의료 인재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오랜 세월 나이팅게일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메리 시콘은 이제 진정한 간호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녀의 삶은 인종과 신분을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위대한 사례이며,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의료 인력과 간호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늦게나마 빛을 본 메리 시콜의 이야기는 정의는 결국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