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매춘부에서 영국 왕세자의 연인, 이집트의 공주가 되었던 마그리트 알리베르. 화려한 사랑과 결혼 뒤에는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유혹과 권력, 조작된 재판의 중심에 선 한 여인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성장배경
1890년, 마그리트 알리베르는 프랑스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고통으로 가득했는데, 네 살 된 남동생이 사고로 사망한 뒤 그녀는 부모의 분노를 받아 수녀원에 보내졌습니다. 수녀원에서 외로움과 죄책감 속에 자라난 그녀는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열다섯에 임신하며 하녀 자리마저 잃게 됩니다. 결국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몸을 팔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상류층 고객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로 성장하게 됩니다. 당시 고급 매춘 세계를 주름잡던 마담 드 네르의 눈에 들어 그녀는 유럽 상류층 인사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17세에는 부유한 유부남 안드레 멜로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아파트와 생활비를 제공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고 그녀는 위자료로 받은 거액의 돈으로 딸을 데려와 교육을 시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마그리트는 파리 사교계에서 이름을 떨쳤고, 이 시기 영국 왕세자 에드워드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결혼 후 삶과 죽음
왕세자 에드워드와의 만남은 마그리트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연애를 나누며 18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 편지에는 사랑 고백부터 정치와 왕실 내부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에드워드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며 이별을 고하자, 마그리트는 편지를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왕실을 위협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부유한 상속인 샤를 로랑과 결혼했지만 성격 차이로 6개월 만에 이혼하고 위자료를 받아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다음으로 이집트의 왕자 알리 파미 베이와 결혼하면서 '이집트의 공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억압적인 이슬람 문화와 성격 차이로 갈등이 극심해졌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마그리트는 보수적인 이집트 귀족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부부는 매일같이 다투며 결혼 생활은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영국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벌어졌습니다. 오페라 관람 후 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또 한 번의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마그리트는 베개 밑에 숨겨둔 권총으로 남편 알리를 쏘았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하고, 마그리트는 살인 혐의로 체포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영국 왕세자와 주고받은 편지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과거 직업과 관계를 모두 숨긴 채 재판을 받았습니다. 유능한 변호사의 전략과 왕실의 개입으로 인해 재판은 그녀에게 유리하게 흘렀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납니다. 이후 그녀는 알리의 재산을 상속받으려 했지만 이집트 법원에서 거절당했고, 파리로 돌아가 왕자의 미망인이라 자칭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이후에도 다섯 번 결혼하며 각 남편에게서 위자료를 받았고,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재판 이후 마그리트는 에드워드 왕세자와의 연애를 비밀로 감춘 채 이집트 왕자의 미망인으로 살아갑니다. 왕자와의 결혼 사실을 미화해 프랑스 상류층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했고, 다섯 번이나 결혼하며 각 남편에게서 위자료를 받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끝내 에드워드의 편지 일부를 끝까지 숨긴 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1971년, 마그리트는 80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녀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보다도 더 극적이었습니다. 가난한 소녀에서 왕세자의 연인이자 살인범으로, 다시 귀족 부인으로 살아간 그녀의 삶은 20세기 초 유럽 사회의 위선과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마그리트 알리베르는 왕실과 법, 언론,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교묘히 이용한 인물이자, 그 시대가 만들어낸 모순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역사에서 종종 잊혔지만,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삶은 매혹적이고도 경계해야 할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