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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비에른 안데르센

by 파워뷰티 2025.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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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출연한 비에른 안데르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는 찬사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눈부신 외모가 준 명성과 사랑은 동시에 그의 인생을 무너뜨린 족쇄가 되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 영화계에서의 성적 대상화, 그리고 이어진 정신적 고통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아름다움이라는 찬사 뒤에 숨겨진 비극, 비에른 안데르센의 삶은 우리가 다시 한번 ‘스타의 그림자’를 돌아보게 만든다.

비에른 안데르센

1. ‘가장 아름다운 소년’의 탄생, 비극으로 향한 시작점

195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비에른 안데르센은 태어날 때부터 고난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나 그의 존재조차 몰랐던 비에른은, 기자이자 모델이었던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갔다. 어머니는 자유로운 예술가였고, 둘은 친구처럼 여행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비에른이 10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실종되었고, 1년 후 스웨덴 숲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0년이 지난 뒤에서야 자살로 판명되었지만, 어린 비에른에게 이 사건은 정신적 외상을 남겼고 그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비에른은 이복누이와 함께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할머니는 잘생긴 외모를 지닌 손자를 ‘유명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1970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새로운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주인공인 ‘타지오’ 역을 위해 유럽 전역을 돌며 미소년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비에른을 데리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수백 명의 소년 중에서 단연 돋보인 비에른은 비스콘티 감독의 선택을 받아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당시 영화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고, 주인공은 한 미소년을 짝사랑하다 죽어가는 예술가였다. 소설은 고도로 문학적인 표현과 철학, 음악적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지만, 영화는 감독의 개인적인 성적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해석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비에른은 영화 속에서 극도로 아름답게 표현되었고,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전 세계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 칭했다. 특히 일본과 유럽에서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졌고, 그는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찬사는 그에게 기쁨이 아닌 고통의 시작이 되었으며, 인생은 그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2. 유명세 뒤에 가려진 학대, 성적 대상화의 트라우마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사이, 비에른 안데르센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유명세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힌 것은 촬영 현장에서의 부적절한 경험과 이후 이어진 성적 대상화였다. 영화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는 비에른을 영화 속에서 아름답고 관능적인 존재로 만들어냈지만, 촬영 당시 선정적인 장면의 요구나 촬영 외적으로도 비에른에게 감정적으로 부적절한 접근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영화 촬영 후 그를 게이 바나 동성애자 모임에 데려가곤 했으며, 어린 비에른은 자신이 원치 않은 시선 속에 노출되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서 성적 트라우마로 이어졌다. 그는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그 유명세로 인해 놀림을 당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락가수를 꿈꾸던 평범한 소년은 ‘천사의 입술’, ‘아름다운 악마’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성적 상징물이 되어갔고, 또래 친구들의 조롱과 남학생들의 성적 농담에 시달려야 했다. 사춘기 소년에게 ‘아름답다’는 말은 칭찬이 아닌 수치심을 주는 폭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소속사는 그를 보호하기보다는 상업적 이미지로 활용했고, 그는 성숙해가기 전에 이미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팔려 다니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아이돌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탱크톱을 입은 채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며 락밴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인기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 속 남장여자 ‘오스칼’이나 다양한 미소년 캐릭터들의 모델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잃고 정신적 붕괴를 겪어야 했다.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나는 상품이었다. 나의 의사는 존중받지 못했다”고 회고하며, 그 시절을 ‘성적 착취’라고 표현했다.

3. 외면한 명성과 남겨진 상처,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인생

비에른 안데르센은 성인이 되면서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가수로도 활동했으며, 영화 몇 편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모두 흥행에서는 실패했고 대중의 관심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나이든 남성 팬들로부터 선물과 돈을 받으며 살아간 것도 결국에는 ‘성 노예’와 다름없는 삶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존감을 잃었고,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 살아가게 되었다.

그는 결혼해 자녀를 두기도 했지만, 한 아이는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사망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된다. 이 사건은 부부관계에 균열을 만들었고, 결국 결혼생활도 무너져 내렸다. 그는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이 ‘자신을 어린 나이에 성적으로 이용했던 영화 감독’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인터뷰에서 “나는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고 눈물로 토로했다. 또한 영화계에는 “파시스트 같은 인물들이 많았고,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는 그중 가장 큰 그림자였다”고 고백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스웨덴의 한 낡은 아파트에 은둔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가 2021년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에 출연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싸우는 시간들이었다. 그는 오랜 우울증 속에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가며 작은 콘서트를 열고,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화려했던 젊은 시절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것을 꺼렸고, 화려했던 외모 대신 환상적인 은발과 수염을 기른 그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마법사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죽음과 나의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삶은 명성과 아름다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슬픔, 억압, 착취, 그리고 회복되지 못한 상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되짚게 만든다. 비에른 안데르센은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과거를 회상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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