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비주얼과 깊이 있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배우 리 페이스. 잘생긴 외모 이면에 숨겨진 진중한 연기 철학과 꾸준한 성장의 이력을 따라가 본다. 브로드웨이에서 할리우드까지, 그리고 개인적인 정체성과 사랑까지. 그 모든 것을 담은 진짜 리 페이스 이야기.

1. 사우디에서 줄리아드까지: 세계를 품은 배우의 성장기
리 페이스는 1979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유 엔지니어, 어머니는 교사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이국적인 환경에서 자란 경험은 훗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본격적인 연기 활동은 고등학교 시절, 수영을 하던 중 귀 질환으로 운동을 그만두면서 시작됐다. 어머니의 권유로 연기에 입문한 그는 곧 연기의 매력에 빠지며 진로를 결정한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학교 중 하나인 줄리아드 스쿨 드라마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배우 수업을 받는다. 이곳에서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비롯한 고전 희곡과 무대 연기를 집중적으로 배우며 탄탄한 연기력을 다졌다. 졸업 후에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무대 경험을 쌓았고, 2003년 TV영화 *솔저스 걸(Soldier's Girl)*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미군과 트랜스젠더 여성 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리 페이스는 트랜스젠더 역을 맡아 성 정체성과 감정의 복합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매일 몇 시간씩 분장을 감수하며 여성성을 구현해낸 그의 노력은 결국 골든글로브 TV 부문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큰 성과로 이어졌다. 외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입증한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 예술적 감성과 메소드 연기로 주목받은 리 페이스
2006년, 리 페이스는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다. 인도 출신의 감독 타셈 싱은 솔저스 걸에서 그를 본 후 캐스팅을 결정했고, 리 페이스는 하반신이 마비된 스턴트맨 역할을 맡아 메소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실제로 두 달간 휠체어를 타며 생활하고, 감정을 유지한 채 촬영에 임한 그의 몰입은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흥행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영화의 환상적인 미장센과 배우의 진심 어린 연기는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하며 컬트적 명작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굿 셰퍼드, 미스 패티의 어느 특별한 하루, 싱글 맨 등 다양한 작품에서 조연과 주연을 오가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했다. TV 드라마 푸싱 데이지스에서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제빵사 ‘네드’ 역으로 출연했는데, 이 작품은 리 페이스를 염두에 두고 대본이 쓰였을 만큼 그의 이미지를 반영한 캐릭터였다. 미스틱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이 드라마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는 에미상, 골든글로브 등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작가 파업 여파로 시즌 2에서 조기 종영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리 페이스는 브레이킹 던 파트2에서 뱀파이어 ‘가렛’ 역, 호빗 시리즈에서는 엘프왕 ‘스란두일’ 역으로 출연해 전 세계적인 흥행작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스란두일 캐릭터는 원작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그의 우아한 외모와 존재감 있는 연기로 주연급 캐릭터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황금빛 갑옷과 깊은 눈빛, 그리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완벽히 소화한 그는 '엘프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으며 새로운 팬층을 형성했다.
3. 스타가 되기보다 좋은 배우로, 그리고 진짜 나로 살다
리 페이스는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 같지만, 실제로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타가 되는 데 관심 없다”며,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며 연기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는 소망을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평소 스스로를 '너드'라고 표현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가는 배우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연기 변신을 통해 ‘믿고 보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2014년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빌런 ‘로난’으로 등장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도 합류했다. 원래는 주인공 스타로드 역을 두고 오디션을 봤지만, 감독 제임스 건은 그를 로난 역에 캐스팅했다. 이후 캡틴 마블에도 같은 역으로 재등장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2021년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운데이션에서 은하 제국의 황제 형제 데이를 연기하며 또 한 번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한편, 그의 사생활도 관심을 모았다. 한동안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았던 그는 2012년 배우 이안 맥켈런이 인터뷰에서 ‘게이 배우’로 그를 언급하면서 본의 아닌 아우팅이 되었고, 이후 2018년 인터뷰에서 동성애자임을 공식 인정했다. 2022년에는 미국 디자이너 매튜 폴리와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많은 팬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외모보다 내면으로 더 큰 울림을 주는 배우 리 페이스. 그는 여전히 거창한 스타가 되기보다, 자신에게 진실한 역할과 인물을 연기하는 데 집중하며 ‘진짜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그를 다시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깊은 신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