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코미디 천재 찰리 채플린. 그는 유쾌한 웃음 뒤에 감춰진 충격적인 사생활로도 유명했습니다. 네 번의 결혼, 수많은 여성 스캔들, 그리고 가난했던 유년 시절까지. 채플린의 이면을 통해 천재의 그림자와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첫 번째 결혼과 가스라이팅의 시작
찰리 채플린은 29세였던 1918년, 16세의 배우 지망생 밀드레드 해리스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밀드레드의 임신 소식으로 인해 급하게 이루어졌지만, 나중에 임신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채플린은 아내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혼 생활은 불행하게 흘러갔습니다. 채플린은 밀드레드를 무시하고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공했으며, 그녀의 소비를 철저하게 통제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20년에 이혼하게 되었고, 밀드레드는 위자료와 함께 집을 받았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세계적인 배우이자 감독으로, 수많은 명작을 남긴 코미디계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외면과 달리 사생활은 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여성 편력에 대해 나는 2천 명의 여배우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말하며 대놓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 밀드러 드는 단 16살의 어린 나이에 채플린을 만났고, 임신했다는 이유로 결혼했지만 사실 그 임신은 거짓이었습니다. 채플린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밀드러드를 끊임없이 무시하고 통제하며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고, 외출 시에는 다른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도록 명령했죠. 채플린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보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존재로 여겼고, 불신과 학대 속에서 결국 결혼은 파국을 맞았습니다. 이혼 후에도 밀드러 드는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고, 채플린은 약 1억 원 상당의 위자료를 주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후 두 번째 결혼에서 또 다른 스캔들이 시작되죠.
어린 소녀와의 결혼들, 반복되는 실수
채플린은 35세였던 1924년, 16세의 리타 그레이와 결혼했습니다.리타는 채플린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와 가까워졌고, 임신 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러나 채플린은 이 결혼을 원치 않았으며, 리타에게 낙태를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 동안 채플린은 리타에게 부당한 성적 요구를 했으며, 이를 거절하면 화를 내는 등 가정 내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27년에 이혼하게 되었고, 리타는 당시로서는 거액인 위자료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아내 리타 그레이는 채플린이 35살일 때 단 12살이었습니다. 이후 리타가 미성년자 신분으로 임신하자 채플린은 낙태를 요구했으며, 거절당하자 가족의 협박을 받고 결국 억지 결혼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채플린은 리타를 협박하며 "못 나와 사는 게 질리게 만들어줄 것"이라고까지 말했고, 리타는 법정에서 그의 비정상적인 성적 요구를 폭로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3명이 함께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강요했다는 내용이 법정 증언에 포함되었죠. 이로 인해 찰리는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던 11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채플린은 끝없이 어린 여성들과의 관계를 반복했습니다. 그의 유년기 역시 불우했습니다. 어머니는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갔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빠져 자녀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찰리는 고아원과 정신병원, 사이비 종교에 시달리는 가정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정서적 결핍을 겪었고, 이로 인해 성인이 되어도 정상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마지막 사랑과 쓸쓸한 말년
채플린은 54세였던 1943년, 18세의 우나 오닐과 결혼했습니다.우나는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이 결혼은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성공적이었으며, 두 사람은 8명의 자녀를 두고 평생을 함께했습니다. 루나는 채플린의 사망까지 그의 곁을 지켰으며, 채플린은 그녀를 자신의 삶에 있어 최고의 행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결혼 생활은 그의 개인사와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그의 복잡한 사생활은 FBI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이는 그의 영화 활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나 오닐과의 결혼은 그의 말년에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채플린의 세 번째 아내 폴렛 고더드는 앞선 여성들과 달리 상당히 주체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백만장자와의 이혼 후 연기자로서 성장하던 중 찰리를 만나 비밀리에 연애를 시작했고, 모던타임스와 위대한 독재자 등 명작을 함께 만들어내며 커플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폴렛의 바쁜 활동과 찰리의 집착적 성향은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고, 큰 다툼 없이 조용히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채플린은 조안 베리와의 친자 소송에 휘말려 사회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고, 재판에서 혈액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변태라고 낙인찍었고, 그는 점점 고립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찰리는 18세의 우나 오닐과 네 번째 결혼을 하며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만났습니다. 루나는 예술가 집안 출신으로, 찰리와의 나이 차는 36살이었지만 이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며 무려 35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채플린은 우나를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 표현했고, 여덟 자녀를 두며 말년을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다 88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모두를 웃게 했지만, 인생 자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