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무대 장악력, 파격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예술성까지 겸비한 레이디 가가는 단순한 팝스타를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흔든 그녀의 성장 배경부터 음악적 성공, 사회운동까지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따라가 본다.
1. 천재의 탄생, 음악으로 꽃핀 어린 시절과 자아의 성장
레이디 가가, 본명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저르마노타는 198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특히 아버지는 비틀즈, 엘튼 존, 빌리 조엘 등의 음악을 틀어주며 그녀의 감성을 키웠고, 어머니는 4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하여 음악성과 표현력을 조기에 터득하게 했다. 가가는 11살에 줄리아드 입학 허가를 받았을 정도로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보였지만, 대신 카톨릭 학교를 선택하며 다소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녀는 남다른 감성과 열정으로 꾸준히 피아노를 작곡하며 실력을 쌓았고, 14살에는 뉴욕의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할 만큼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대학교 티쉬 예술학교에 조기 입학해 작곡과 사회비평 관련 학문을 접하며 지성과 예술을 결합한 시야를 넓혔다. 그러나 주변의 이해 부족과 예술적 갈등 속에서 그녀는 1년 만에 자퇴하고, 독립적인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작은 클럽 공연과 아동용 음반 작업 등을 하며 기반을 다졌고, 극심한 시련도 겪는다. 프로듀서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PTSD와 신체 마비 증상까지 동반한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여성 인권과 성폭력 피해자 보호 활동에도 적극 나서게 된다. 단지 음악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한 아티스트로서의 기반이 이때 다져진 셈이다.
2. 실패를 딛고 팝의 여왕이 되다: 음악, 패션, 그리고 사회운동
2006년, 그녀는 프로듀서 로브 푸사리를 만나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푸사리는 그녀의 음악적 가능성을 알아보고 지원했으며, ‘레이디 가가’라는 예명을 지어준 인물이다. 이름의 유래는 퀸의 'Radio Ga Ga'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그녀의 독창성과 프레디 머큐리 같은 무대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이듬해 가가는 데프잼과 첫 계약을 맺지만, 3개월 만에 해지되며 또 한 번 좌절을 겪는다. 그러나 그녀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벌레스크 쇼 등 비주류 무대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새로운 팬층을 확보한다. 마약과의 접촉, 아버지와의 갈등 등 사적인 고비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넘어섰고, ‘하우스 오브 가가’라는 크리에이티브 팀을 결성해 스타일, 무대, 음향 등에서 완벽한 아티스트로 자신을 구성해나간다. 2008년, 첫 정규앨범 ‘The Fame’의 발매와 함께 그녀는 글로벌 슈퍼스타로 도약한다. 'Just Dance', 'Poker Face'는 연달아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며 그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다. 이어지는 ‘The Fame Monster’ 앨범은 ‘Bad Romance’, ‘Telephone’ 등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은 곡들로 구성되어 그래미 수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 가가는 화려한 의상, 실험적인 뮤직비디오,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압도적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완전히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자리잡는다. 동성애자 군복무 관련 법안 ‘Don’t Ask, Don’t Tell’ 반대 의미로 생고기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일화처럼, 그녀는 자신만의 예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양성애자로서 LGBTQ 권익 보호에 앞장서며, 진정한 의미의 ‘목소리 있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모습은 그 어떤 퍼포먼스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3. 다시 시작된 정점, 연기자와 인간 레이디 가가
음악에서의 정점을 찍은 레이디 가가는 이후 다양한 음악 장르와 예술적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2011년 발매한 ‘Born This Way’는 정체성과 다양성, 죽음, 사랑에 관한 깊은 메시지를 담은 곡들로 구성돼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발매 직후 1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어 재즈에 대한 사랑을 담은 ‘Cheek to Cheek’(2014)은 토니 베넷과 함께 작업하며 대중성과 고전미를 절묘하게 연결했고, 이 앨범은 그녀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동시에 스타일의 변화도 감행했다. 파격 의상 대신 정장이나 심플한 드레스를 입으며, 대중 앞에 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해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 무렵 그녀는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에서 호텔 지배인 역으로 출연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 그리고 2018년, 브래들리 쿠퍼와 함께한 영화 ‘스타 이즈 본’은 그녀의 연기 커리어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가는 처음으로 장편영화 주연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영화 OST ‘Shallow’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그녀에게 그래미, 오스카, 골든글로브를 동시에 안겼다. 이후에도 그녀는 앨범 ‘Chromatica’(2020)를 통해 전자팝 장르로 회귀하며 여전히 도전적이고 살아 있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사회적 영향력도 이어졌다. 아이티 지진 구호 기부, 에이즈 기금 마련, ‘본 디스 웨이 파운데이션’ 설립 등 다양한 자선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미국 대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자로 활약하며 정치적 메시지도 분명히 전했다. 현재 그녀는 영화계에서도 활동을 지속하며, 음악과 연기, 사회운동을 아우르는 ‘진짜 예술가’로 성장 중이다. 한때는 ‘파격’의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영향력 있는 인간 레이디 가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