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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

by 파워뷰티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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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양극성 장애와 격렬한 사랑, 깊은 상처가 존재했다. 치열하게 살아낸 그녀의 삶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비비안 리

성장 배경

1913년 인도 다르질링에서 태어난 비비안 리는 스코틀랜드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영국 기숙학교로 보내져 부모와 떨어져 지냈으며, 이 시기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딸을 낳고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작은 배역이라도 잡기 위해 과감하게 기회를 잡았다.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경력을 쌓아가며 할리우드에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뿐 아니라 풍부한 지식과 언어능력까지 갖춘 지성인이었고, 사진처럼 대사를 외우는 기억력까지 갖췄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은 점점 인정받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전 세계 1400명이 넘는 후보 중에서 발탁되었다. 이 작품은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줬고, 그녀는 26세의 나이에 할리우드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양극성 장애를 앓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했으며 때때로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심리적 압박과 연이은 정신적 위기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남편인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의 격정적인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치달았다.

결혼 이후 삶과 죽음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는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둘은 이미 다른 배우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결국 각자의 배우자와 이혼한 뒤 1940년 결혼에 골인했지만, 이 결혼은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자녀 양육권을 포기해야 했고, 이후 함께 한 연극 무대와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거나 충돌을 낳았다.특히 그녀의 정신질환은 점점 악화됐다. 지나친 성적 욕망과 불안정한 감정 조절은 낯선 이들과의 관계, 갑작스러운 분노 폭발로 이어졌고, 이는 부부 관계를 심각하게 무너뜨렸다. 마침내 그녀는 올리비에와도 결별했고, 이후 배우 피터 핀치 등과의 관계를 이어가며 삶의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녀는 다시 한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듀보아를 연기하며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현실 속 그녀의 정신은 연기 속 인물처럼 더욱 파괴되어 갔다. 무대 위에서는 환영을 받았지만, 무대 밖에서는 점차 일상을 잃어갔다. 1953년 영화 촬영 중 갑작스러운 정신 붕괴를 겪고 병원에 입원, 전기충격 치료를 받았다. 이후에도 연극에 도전했지만 점점 연기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끝내 마지막 영화 배선 위의 고양이를 끝으로 은퇴를 맞이했다. 1967년 여름, 반복되는 폐렴으로 인해 그녀는 침대에서 요양 중이었다. 화장실에 가던 중 쓰러졌고,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향년 54세. 그녀의 죽음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런던의 모든 극장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조명을 껐다. 죽은 후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바로 올리비에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 그녀의 곁을 지켰고, 이것이 진짜 사랑이었다고 회상했다.

사후 영향

비비안 리의 삶은 단순한 배우의 삶을 넘어서 예술가로서의 고통과 열정, 여성의 욕망과 사랑, 정신병과의 싸움을 모두 함축한 전설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저 아름다운 배우가 아니었다. 자신의 정신질환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세상 앞에서는 끝까지 무대를 지켰다.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가 남긴 작품과 연기는 더욱 빛났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남아있고, 그녀의 연기력은 후대 여배우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 다큐멘터리도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2022년 개봉한 영화 엘비스에서처럼 당시 스타들의 비극적 인생이 재조명되면서 비비안 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그녀가 앓았던 양극성 장애는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고통과 투병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했으며,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의 전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 사람은 비비안이었다. 비비안 리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예술을 위해 삶 전체를 던졌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고통과 예술, 사랑과 병의 경계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다 간 여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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