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촉망받던 배우 샤론 테이트. 그녀의 인생은 화려하게 시작되었지만, 찰스 맨슨 패밀리에 의해 끔찍하게 막을 내렸다. 로만 폴란스키와의 사랑, 영화계의 유망주로 떠오른 커리어,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빼앗긴 생명. 그 비극적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1. 꽃처럼 피어난 샤론 테이트, 천재 감독과의 인연
샤론 테이트는 1943년 1월 24일,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폴 테이트는 군인이었고, 그의 직업상 그녀는 어린 시절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보내야 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타고난 외모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미인대회에서 주목받았고, 6개월에 출전한 대회에서 이미 우승을 거머쥘 정도로 눈에 띄는 미모를 자랑했다. 이후 모델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1960년대 초, 광고와 TV 드라마 단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조금씩 배우로서 기반을 닦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1965년, 영화 '악마의 눈'에서 조연급 배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이어 1967년 '인형의 계곡'에서는 주연을 맡으며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연기는 단순히 외모에 그치지 않았고, 묵직한 캐릭터를 은은하게 소화해내며 골든글로브 신인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이 시기, 그녀는 영화 ‘두려움 없는 뱀파이어 킬러’의 촬영 현장에서 감독 로만 폴란스키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로만 폴란스키는 폴란드 출신의 천재 감독으로, 이후 ‘차이나타운’, ‘피아니스트’ 등의 명작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1968년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전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고, 샤론 테이트는 남편과 함께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특히 그녀는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으며,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아이를 위해 베벌리힐스 인근의 고급 주택으로 이사한다. 세련되고 지적인 아름다움으로 주목받은 샤론은 그 당시 가장 유망한 여배우로 꼽혔으며, 새로운 작품 준비도 한창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꿈은 곧 악몽으로 변하게 된다.
2. 꽃다운 나이, 이해할 수 없는 폭력에 스러지다
1969년 8월, 그녀는 출산 예정일을 2주 남겨둔 만삭 상태였다. 로만 폴란스키는 영화 촬영으로 런던에 체류 중이었고, 그녀는 미국 집에서 출산을 준비하며 지인들과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이 평화로운 공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의 현장으로 바뀐다.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 소위 '맨슨 패밀리'라 불리는 무리들이 집에 침입했고, 이들은 마약에 취한 채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샤론과 함께 있던 4명의 지인들은 하나씩 잔인하게 살해되었으며, 임산부였던 샤론은 배 속의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무자비한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수십 번의 칼부림, 그리고 목에 밧줄을 묶는 등 잔혹한 방법으로 그녀는 목숨을 잃게 된다. 그녀의 죽음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으며, 범인들의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남편 로만 폴란스키와 친분이 있었던 브루스 리마저 한때 의심을 받았다. 수사 중, 전혀 다른 사건으로 체포된 맨슨 패밀리 일당 중 한 명의 자백으로 이 끔찍한 살인이 밝혀지게 된다. 맨슨은 원래 이 집에 살던 음악 프로듀서 테리 멜처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테리 멜처는 맨슨의 음악을 혹평한 인물로, 맨슨은 보복을 위해 그의 집을 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 집이 이미 샤론 테이트 부부에게 임대되었는지도 모른 채, 무차별적인 살인을 지시한 것이다. 결국 아무 죄도 없는 26세의 여배우는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야 했고, 이 비극은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3. 맨슨의 광기와 남겨진 자들의 상처
찰스 맨슨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살인마로 기록된다. 그의 유년기는 방치와 폭력으로 점철되었으며, 청소년 시절부터 범죄와 교도소 생활을 반복했다. 그는 감옥에서 배운 심리조작을 바탕으로 1960년대 말 히피 문화를 이용해 '맨슨 패밀리'를 조직하게 된다. 그들은 마약에 취해 공동체 생활을 하며, 맨슨의 종말론적 교리를 맹신했다. 흑인과 유명인을 제거해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그의 왜곡된 메시지는 결국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는다. 1971년, 그는 살인 교사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지만, 이듬해 사형제도가 폐지되면서 종신형으로 감형된다. 교도소 수감 중에도 그는 12차례 가석방을 신청하고, 26세 연하 여성과의 옥중 결혼을 시도하는 등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2017년, 83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남편 로만 폴란스키는 아내의 죽음 이후 오랫동안 상실감에 시달렸으며, 영화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여러 성추문에 휘말리며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샤론의 죽음 이후 술도 종교도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다"고 밝혔다. 그 말은 그의 삶 전체에 드리워진 죄책감과 허망함을 보여준다. 샤론 테이트는 이제 단순한 배우가 아닌, 시대의 상처로 기억된다. 그녀는 영화와 연예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남겨진 이야기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비운의 여배우’라는 타이틀은 그녀에게 너무 잔혹하고, 동시에 너무도 상징적인 단어다. 아름다움과 가능성, 그리고 불합리한 폭력이 만든 이 비극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비극을 단순한 연예계 사건이 아니라, 인간성과 광기의 경계에 대한 경고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